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파스퇴르 (문단 편집) == 기타 == * 분자의 구조에 [[빛]]의 [[편광]]현상을 관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거울상의 입체구조([[광학 이성질체]])가 있음을 주장하고,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이걸 조사하기 위해서 그는 '''[[타르타르산]]의 결정체를 직접 확대하여 눈으로 보면서 하나하나 구분했다.''' 이 발견도 당연히 노벨상감이라 파스퇴르가 살아있을 때 노벨상이 있었다면 [[노벨 화학상]]도 탔을 것이다. *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간의 전쟁]] 중 프로이센에서 받았던 훈장을 돌려보내면서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화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파스퇴르가 한 말은 디스쿠르 쉬르 랑오귀라시옹 드 랑스티튜 파스퇴르에 존재하는 말이다. 파스퇴르가 한 정확한 말은 '''"Science knows no country, because knowledge belongs to humanity, and is the torch which illuminates the world."'''으로, '''"과학은 조국을 모른다. 왜냐하면 지식은 인류의 것이고, 세상을 비추는 횃불이기 때문이다"'''이다. 프랑스어 원문은 La science ne connaît pas de pays (혹은n'a pas de patrie) parce que la connaissance appartient à l'humanité, et elle est la torche qui illumine le monde인데, 한국어로 해석하면 "과학은 국가를 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식은 인류의 것이며 모든 세계를 (공평하게) 비추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다만 발언은 사실이지만 보불전쟁 중 프로이센의 훈장을 돌려보냈다는 일화는 인터넷 상에 잘못 퍼진 것으로, 파스퇴르는 애시당초 프로이센에서 훈장을 받은 적이 없으며, 다만 본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을 따름인데, 1870년 전쟁에서 그가 돌려보낸 것은 훈장이 아니라 이 명예 박사 학위였다.[* En 1868, il devient docteur honoris causa de l’université de Bonn qui lui accorde également un diplôme de médecin, diplômes qu’il renverra lors de la guerre franco-prussienne de 1870] 하지만 또한 이 명예 박사 학위를 돌려보내면서 해당 발언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해당 발언의 정확한 출처는[* 출처: Une biographie de savant - La Vie de Pasteur, Revue des Deux Mondes, 4e période, tome 162, 1900 (p. 457-468.] 파스퇴르가 국제회의 congrès international에서 한 발언으로, 앞뒤 맥락을 포함한 발언은 다음과 같다. >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오. 첫째 생각은 과학엔 조국따위 없단 것이오. 두 번째 생각은 과학은 조국의 "의인화"라는 것이오(의역: 조국 그 자체라는 것이오). 이 생각는 첫째 생각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첫째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소이다. '''과학엔 조국이 없는 이유는 바로 지식은 인류 전체의 재산이며, 온 세상 전체를 밝히는 횃불이기 때문이오'''. 과학은 국가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 국민들 중에서 이것이 생각과 지성의 작업 때문에 가장 먼저 진보할 것이기 때문이외다. 우리들 과학자들은 각자 스스로의 조국을 위해 (국제 협회에서의 발언이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국이 앞서게 하기 위해 한 판 붙어봅시다.[* Je me sens pénétré de deux impressions profondes : la première c’est que la science n’a pas de patrie, la seconde, qui paraît exclure la première, mais qui n’en est pourtant qu’une conséquence directe, c’est que la science doit être la plus haute personnification de la patrie. La science n’a pas de patrie, parce que le savoir est le patrimoine de l’humanité, le flambeau qui éclaire le monde. La science doit être la plus haute personnification de la patrie parce que de tous les peuples, celui-là sera toujours le premier qui marchera le premier par les travaux de la pensée et de l’intelligence. Luttons donc dans le champ pacifique de la science pour la prééminence de nos patries respectives. ] 즉, 훈장을 돌려보낸 일화는 잘못 퍼진 것이지만, 해당 발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스퇴르는 1888년 11월 14일 파스퇴르 학교 개관일에 자신이 작성한 원고를 아들로 하여금 읽게 했는데 거기서 한 연설의 일부이다. 그는 해당 연설에서 "이런 노력 끝에 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느꼈으며, 이것은 내 조국의 영광에 도움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기쁘다. 과학에는 조국 없지만 과학자는 조국이 있으며, 과학자는 자기 연구가 세상을 바꿀 영향력을 바로 이 조국에 행사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의역하자면 과학자가 어떤 개발을 하면 가장 먼저 그 혜택을 누리는 게 그 과학자의 조국이라는 것이다][* 원문: Mais quand, après tant d'efforts, on est enfin arrivé à la certitude, on éprouve une des plus grandes joies que puisse res- sentir l'âme humaine, et la pensée que l'on contribuera à l'hon- neur de son pays rend cette joie plus profonde encore. '''Si la science n'a pas de patrie, l'homme de science doit en avoir une,''' et c'est à elle qu'il doit reporter l'influence que ses travaux peuvent avoir dans le monde. 강조된 부분이 해당발언의 원문이다.] 원문의 동사 devoir 동사(doit en avoir une)는 의무나 필요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 있음이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다, 있기 마련이다 라는 뜻으로, 필요하다는 오역에 가깝다. * [[누에나방|누에]]에게 발생하는 미립자병과 연화병의 퇴치법을 발견하여 프랑스의 양잠업계를 도왔다. 이 과정에서 [[장 앙리 파브르|파브르]]를 만나기도 했는데, 정작 파브르는 파스퇴르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누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파스퇴르가 누에의 병을 고치는데 도전한다는 열의는 높이 샀으나, 파스퇴르의 태도가 워낙 거만했기 때문. 파스퇴르는 유럽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당대 최고의 잘 나가는 과학자 중 한명이어서 '내 발표를 이해 못하는 것은 당신이 멍청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코앞에서 서슴치 않고 했다고 한다. 또한, 파스퇴르는 파브르에게도 와인 저장고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파브르는 자신은 가난해서 따로 저장고가 없다고 하자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고 한다. *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어느 날 제자가 그렇게 배운 게 많으신데 그리 신앙심이 깊을 수 있냐고 묻자 파스퇴르는 자신은 오히려 많이 배워서 마치 농부처럼 믿음이 깊고, 만약 아는 게 더 많았다면 농부의 아내만큼 믿음이 깊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 이 과학자의 이름을 따온 실험기구로 [[파스퇴르 피펫]]([[스포이트]])이 있다. * 훌륭한 과학적 업적과 달리 개인적으로는 만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 정도로 그 누구 앞에서도 거만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모난 성격을 가지고 살았으면서도, 세균과 위생에 집착하고,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 딸아이 5명 가운데 3명, 맏딸 잔느는 9살, 둘째딸 세실은 13살, 막내딸 카밀은 2살에 '''요절했다.''' 이 셋은 파스퇴르가 제일 활동이 활발할때 병에 걸렸고, 위독했을 때는 이미 멀리 출장을 가 있어서 딸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아들인 장 바티스트(1851~1908)나 마리 루이제(1858~1934), 이 2명은 무사하게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지만 장 바티스트는 결혼했으나 자식이 없어 직계는 단절되었다. 대신, 마리 루이제는 1남 2녀를 낳았다. 손자인 루이스 파스퇴르 발레 라도트(Louis Pasteur Vallery-Radot,1886~1970)가 의사 및 파스퇴르 전기 작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손자, 손녀들도 자식들이 없어서 파스퇴르 핏줄은 끊어졌다. * 파스퇴르로 인해 인류 최초로 광견병 접종을 맞고 살아난 메스테르는 이후 평생 파스퇴르 연구소 관리인으로 일했다. 메스테르는 1940년 자살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게 파스퇴르의 [[관(장례)|석관]]을 깨내 시신을 훼손하려는 나치 독일에 항거하다가 자살했다고 잘못 알려졌다. 심지어 이게 90년대 초반 어린이 과학서적이라고 나온 것에도 이렇게 서술되었다. '''실제로는'''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인해 가족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고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절망해 자살했는데, 안타깝게도 죽은 줄 알았던 조제프의 가족은 그 뒤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 그는 <생명은 모든 단계에서 죽음을 지휘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딸 3명이 모두 [[장티푸스]]로 죽었기 때문에 감염병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발효처럼 감염과 염증도 미생물[* 당시 의학계는 세균(germ)이라는 용어 자체가 논란이 되어 쓰이지 않는 수준이었다.]에 의한거라는 직관을 가졌으나 의사가 아니라서 임상적 연구를 할 수 없어 아쉬워했다. 그러다 영국의 의사 [[조지프 리스터]][* 조지프 리스터는 소르본에서 성대하게 열린 파스퇴르의 70세 생일파티에 참석하여 자신의 연구가 파스퇴르 덕분이며 그가 모든 의사와 환자들의 존경과 감사를 받는 인물이라는 내용의 헌사를 낭독했고 반신불수 상태의 파스퇴르는 일어나서 그를 껴안았다.]가 파스퇴르의 연구를 참조하여 석탄산을 이용한 외과수술 전후에의 소독법을 확립하였다. [[분류:프랑스의 생물학자]][[분류:프랑스의 화학자]][[분류:1822년 출생]][[분류:1895년 사망]][[분류:화폐의 인물]][[분류:쥐라 출신 인물]][[분류: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분류:파리 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